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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에서 35년? 단순 계산으로 1만2천일이 넘고, 시간으로 환산하면 3만 시간이 넘는 기간을 어느 한 분야에서 일했다는 것인데.... 눈 감고도 작업의 일머리를 연산(演算)하고, 보지 않고도 전 공정을 훤히 꿰는 차원일 것이다.강산을 세 번 반이나 바꿔 가며 대구 출판계에서 한길을 걸어온 학이사(學而思) 신중현 대표가 책을 펴냈다. ‘다시, 지역출판이다’다. 지역 출판을 화두로 30년 넘게 현장에서 일 하면서 느낀 소회를 담았다.1987년 출판사에 첫발을 내딛은 당시 출판 상황과 대구에서 인쇄일을 하면서 느꼈던 생각과 바람,
왜관(倭館)? 일본인들의 공관? 경북 칠곡군 왜관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의문이 하나있다.반일(反日)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지명이 존속할 수 있었을까.(삼천포나 이리처럼 지명을 바꿔 달라고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할 만도하다) 여기에는 왜관이란 지명을 거리낌 없이 수용한 지역민들의 정서가 전제되었을 것이다.무얼까? 왜색이 짙은 지명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린 이유. 그것은 아마 조선 후기부터 칠곡에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 새상품, 신문물에 대한 주민들의 저항이 없었고, 또 경북 내륙 소도시가 낙동강을 통해 해외로 통하는 것을 환영했
일반 독자들에게 용궁면(예천군)은 낯선 이름이다.(지명도에서 오히려 회룡포에도 밀린다) 용궁면은 한 때 예천군과 양강(兩强) 구도를 이루었을 정도로 세를 뽐냈지만 지금은 1500여 가구, 인구 2367명(2022년)인 향촌으로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고대 예천엔 미리미동국(彌離彌凍國)이란 소국이 들어섰다가 곧 신라의 복속 되었다.(미리미동국을 밀양으로 비정한 학설도 있음) 이 소국의 옛터가 축산현 이었는데 축산현은 용궁면의 옛 이름이다. 이 사실로 본다면 용궁면 일대가 미리미동국의 근거지였음을 알 수 있다.한 왕조를 품었을 정도로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