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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영남 전통시장] (52) 본리동 달서시장

기사승인 2022.01.25  16: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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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리동, 본동 아파트 주민들 라이프 스타일 맞춰 점포 구성

1980년대 달서구 본리동 지역엔 대단지 아파트촌이 들어섰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전통시장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달서구청은 1985년에 달서시장을 오픈했다. 푸른신문 제공

대구경북 지역에 오일장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 무렵. ‘증보문헌비고’ 기록을 보면 이 무렵부터 대구 경북엔 화원장, 백안장, 현래장, 차천장 등이 열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전통시대 오일장 입지의 제일 요건은 그 지역이 교통, 물류, 상업의 중심지로 기능 하느냐 여부였다. 여기에 지역간의 거리, 상권의 분산, 역원(驛院)의 위치 등이 고려 되었는데, 이는 당시 물류, 상행위의 주체였던 보부상이나 장꾼들의 하루 이동거리 등을 참작했기 때문이다. 대구 주변 시장이 장꾼들의 이동거리인 30~40리 내에 집중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30~40리를 단위로 개설되었던 전통시장은 어느 순간 그 ‘간격’이 무너지고 마는데 그 이유는 두 말할 것도 없이 교통수단의 발달이었다. 이후 재래시장의 입지는 전적으로 지역의 상권이나 행정·경제적 필요가 주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럼 현대 사회에 들어와 전통시장의 가장 큰 설립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여러 사유들이 있지만 인구의 집중, 주택가 밀집이 시장 입지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대구 전통시장이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면 쉽게 입증된다. 대표적인 곳이 성서용산시장, 산격종합시장, 반야월종합시장, 신매시장 등이다.

이번에 소개할 본리동 달서종합시장도 전적으로 이 흐름에 근거하고 있다.

한때 두류공원 밑자락 허허벌판이었던 본리동엔 1980년 성당우방맨션 입주 이후 10여개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섰다. 이후 성당래미안 1~3차 대단지가 입주한 이후 주변 주택가까지 계산하면 1~2만호가 훨씬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대단지 아파트촌의 입지는 필연적으로 전통시장을 필요로 했고 달서시장은 그 수요에 대한 답변이자 결과였다.

◆1980년대 아파트 들어서며 전통시장 오픈=1968년에 3공단이 준공되고 1970년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대구시는 급격한 팽창기에 접어든다.

남구 대명동 일대, 수성구 중동·상동, 북구 비산동·노원동 일대에 머무르던 시세(市勢)는 1980년대 들어오며 서남쪽 일대는 성당동, 내당동, 죽전동, 송현동 일대까지 시가지가 확장되었다.

이 당시 제일 먼저 본리동에 아파트 시대를 연 건 ‘대영맨션’이었다 1개 동, 5층 건물에 40세대에 불과했던 이 아파트는 본리동에 대규모 아파트촌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1985년에 성당우방맨션, 한신아파트가, 1987년에 우방아카시아 멘션이 들어서며 본리동에 본격 아파트 시대를 열어 갔다.

본리동 일대 공동주택이 들어서면서 유통시설 필요성이 대두되자 달서구청은 1985년 달서종합시장을 설립하게 된다. 즉 본동의 주택가와 본리동에 신시가지 아파트 주민들의 생활편의 위해 세워진 행정 시장이자 관(官)주도 시장이었다.

여기에 본리도서관, 본리행정센터를 비롯 대구공대, 제일여상, 성당중, 새본리중, 성당초, 대구예담학교 등이 잇따라 들어서며 학교, 교육, 행정시설이 밀집된 핵심 상권으로 성장을 거듭해 갔다.

그 후 본리롯데캐슬(2008년), 달서 유림노르웨이숲(2008년), 성당래미안 e-편한세상 1단지(2009년) 등 대단지가 들어서며 상권이 팽창하자 2006년 북편으로 시장 상가를 크게 확장해 새로 단장하기에 이르렀다

달서시장의 맛집으로 유명한 ‘자인떡방앗간’의 박재홍 대표와 김인정씨. 한상갑 기자

◆아파트 주민들 생활 패턴 맞춰 점포 구성= 1985년 시장 오픈, 2006년 증축 등 1, 2차 개설을 거친 달서시장은 현재 265곳 점포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도심 상가 특성을 살려 농산물, 의류, 공산품, 생필품 등 소매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자인떡방앗간 박재홍 대표는 “달서종합시장은 대단지 아파트 가구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아이템들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반찬, 분식, 과일, 채소 등 가정의 식단, 주부들의 기호(嗜好)에 맞춘 점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행히 주변에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형소매점이 없어 상권 다툼은 적은 편이다.

취재를 위해 시장을 둘러보니 시장 입구에서부터 농산물, 건어물, 반찬, 분식집 등이 늘어서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주 고객층이 주부, 여성, 어르신들이다보니 즉석두부, 떡집, 의류, 방앗간, 건강원, 네일아트 등 점포가 붐비는 편이다.

주변에 학교들이 많다보니 하굣길 어린이들이 분식집에 삼삼오오 모여 떡볶이, 어묵, 도너츠 를 먹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조용했던 시장은 오후 4~5시가 되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주부들이 하교하는 어린이들의 간식이나, 저녁 준비를 위해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상인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시장은 일찍부터 ‘주부들의 부엌’ 콘셉트에 맞춰 점포 라인업을 꾸렸다”며 “이 덕에 주부들은 생활의 편의를 얻어 좋고, 상인들은 물건을 많이 팔아 좋다”고 말한다.

달서시장이 도심 시장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아 왔지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2008년부터 유림노르웨이숲, 성당 래미안 등 대규모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상권이 하루아침에 쇠락했다. 시장의 사방에서 동시에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주민들은 모두 이사를 떠나고 공사 차량들만 시장 주변을 오갔던 것이다. 다행히 아파트들이 완공되고, 입주를 시작하면서 상권이 바로 회복되었지만 상인들은 2008년 무렵을 ‘아픈 기억’으로 공유한다.

달서시장 내부 모습. 아파트 주민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점포 구성이 이루어졌다.

◆온라인, 비대면 마케팅에 상인들 시름=유통시장 개방, 코로나 19 이후 달라진 시민들의 소비·구매 패턴도 상인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주택가 아파트엔 택배 차량들이 수없이 드나들고, 시민들은 컴퓨터나 모바일로 안방에서 대부분 구매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상인들은 문제는 코로나-19 이후라고 말한다. 전자상거래나 비대면 마케팅에 익숙해진 시민들이 다시 시장으로 나올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복고풍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좋겠어요. 온라인은 오프라인으로, 비대면은 대면(對面)으로 옛 것으로 돌아가는 운동 말입니다. 주부들이 인터넷, 휴대폰 주문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나오는 모습이 다시 나타나길 기대 합니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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