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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대구 전통시장 탐방] (6)대구 팔달신시장

기사승인 2020.08.11  15: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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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시대부터 강남·강북 이어주던 교통로...지금은 채소도매 성업

1969년 설립된 팔달시장은 팔달교 개통이 후 호황기를 누리다가 농수산물도매시장이 개장한 후 쇠락세로 돌아섰다. 상인회는 팔달시장이 지역 유통의 중심으로 다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상갑 기자

선사시대 대구시 북구 일대엔 많은 부족들이 일단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동천동, 연암산, 침산·검단, 서변동의 취락지가 대표적 유적이다. 이들 부족은 기원전 2~3세기 무렵 힘의 우열에 따른 정치적 통합 과정을 거치는데 당시 가장 예민했던 지역 중 하나가 금호강을 둘러싼 지금의 팔달동 지역이었다.
팔달교 건너 북쪽 기슭엔 강력한 철기문화를 가진 부족(팔달동고분군 세력)이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고, 강의 남쪽엔 검단토성을 중심으로 대규모 마을이 터를 잡고 있었다. 당시 가장 강력한 정치 집단은 비산동, 평리동 고분군을 남긴 달성토성 세력이었고, 지금의 달성공원에 기반 했던 달구벌국은 6세기 무렵 대구를 마침내 통합했다.(물론 이 달구벌국도 신라에 다시 복속되지만)
이렇듯 팔달동은 대구의 철기, 삼국시대 강북·강남 세력과 달성토성 세력의 한 복판에서 균형추, 중심축 역할을 하며 달구벌의 주력으로 성장했다.
고대 금호강은 지리상의 요새 외, 수상교역의 중심이기도 했다. 4~5세기 축조된 불로동고분군에서 상어뼈가 나온 적이 있는데, 이는 고대에 이미 부산 낙동강과 금호강을 잇는 수상 교역로가 있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금호강 특히 지금의 팔달교 일대는 대구의 남북을 연결하던 교통, 국방의 요충지이자 남해 해상세력들이 드나들던 수상교역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이런 지리적 특성은 현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팔달교의 사방엔 팔공산, 칠곡군, 달성군은 물론 중·서·남구 등 대구의 도심이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팔달교, 금호강 일대는 2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대구의 관문, 남북 연결로라는 지리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팔달’(八達)이라는 지명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역사와 전통이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51년 역사를 자랑하는 의성곱창. 쫄깃한 곱창, 얼큰한 육수와 당면은 주당들의 입맛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채소류 전문시장으로 명성=팔달시장은 채소전문시장으로 그 명성을 유지해오고 있는데, 이는 점포의 업종 구성에서 잘 나타난다. 전체 700여 점포 중 채소점이 300여개로 가장 많으며, 고춧가루·젓갈 등의 식품점이 70여개로 그 뒤를 따른다.
팔달시장은 1969년도에 형성 되었으니 올해로 51년째를 맞는다. 1986년 팔달대교 건설은 팔달시장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이 대교를 통해 칠곡, 군위, 왜관은 물은 상주, 안동, 영주 등 경북북부 지역 농산물들이 대구로 유통될 수 있었다. 팔달시장이 농산물 교통의 집산지가 되면서 한때 채소 도매시장으로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30년 넘게 야채를 취급해 왔다는 이진환 씨는 “30년 전만 해도 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장꾼들의 왕래로 시장이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루었다”며 “그 때가 진짜 시장 냄새, 사람냄새가 났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팔달시장은 1988년 북구 매천동에 농수산물도매시장이 개장한 후 상권이 급속히 위축됐다. 도매 기능이 매천동으로 넘어 간데다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급격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대구 북구 주민들의 심야 간식집 팔달포차의 인기 메뉴.

◆팔달시장의 맛집들=비주류들의 판정승! 팔달시장의 맛집 평가는 이 한 마디로 정리된다. 포털에 팔달시장 맛집을 검색하면 팔달포차와 의성곱창이 페이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두 곳 모두 시장의 점포가 아닌 메인 상가에서 벗어나있는 ‘외인구단’ 들이다. 팔달포차는 노점이고 의성곱창은 옛 팔달구시장 쪽 곰탕골목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북구 주민들의 심야 간식 명소 팔달포차는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운영되는 포장마차다. 결정적인 흠결(?)은 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 이 때문에 시내에서 밤새 ‘달린’ 술꾼들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 됐다. 덕분에 ‘콩국에 코를 받고 실신하는 취객들’의 뒤처리는 주인 부부의 몫이다.
이곳 메뉴는 다섯 가지. 김밥(2,000원), 콩국(2,500원), 우동(3,500원), 토스트(3,000원), 라면(3,500원)이 전부. 가격이 저렴해 테이블 회전율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술을 과감히 포기했다. 옛날 역전에서 먹던 우동이 인기가 높지만, 콩국에 찍어 먹는 토스트를 별미로 치는 블로거들도 있다.
쫄깃한 곱창, 얼큰한 육수, 넉넉한 당면... 이 정도면 50~60대 주당들의 코드를 맞추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의성곱창은 구시장 시절부터 영업을 해오던 51년차 노포(老鋪)다. 팔달신시장이 노원 1가 쪽으로 신축 이전하며 시장의 본류에서 멀어졌지만 옛 맛을 기억하는 술꾼들이 잊지 않고 찾는 덕에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전골, 곱창구이 1인분에 8천원 이니까, 여기에 소주 한 병을 추가해도 둘이 2만 원이면 요리, 식사, 술이 해결된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날 아주머니들이 곱창을 다듬고 있었다. 10kg 한 포대를 다듬는데 3명이 꼬박 하루가 걸린다고 한다. (맛집 명성은 그냥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는 맛 때문에 온다는 별종들도 있다.
시장가서 시장 할 때 들르면 좋을 곳. 거창보리밥국수는 이 콘셉트에 딱 맞는 집이다. 작년 TV에서 ‘초저가의 비밀’에 등장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방송 직후엔 50m가 넘는 줄이 생겨 인파에 밀린 손님이 선채로 보리밥을 먹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보리밥집이 TV에 나오려면 전국에 수천대 1 경쟁을 뚫어야 할 텐데 이곳의 비밀은 착한 가격과 양념장 비법. 보리밥 4,000원에 국수가 3,000원, 칼국수도 3,500원이다. 가지무침, 버섯볶음, 무채무침, 양배추 등 계절마다 나오는 신선한 야채들을 이곳 비법 양념과 비벼 먹는 것이 포인트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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