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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업이 이기는 법] 대구 떡볶이 브랜드 자존심 '이소떡'

기사승인 2017.07.21  14: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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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준 대표 "떡볶이 한류를 이끌어가고 싶다"

경북 경산에 자리한 ‘이웃집 소녀 떡볶이’(이하 이소떡) 본사 1층은 마치 ‘카페’와 같은 분위기를 준다. 한쪽에는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기계와 공간이 자리해 있고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깨끗한 주방이 있다. 이소떡의 각종 인스턴트 제품들도 한쪽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소떡 김범준 대표는 “이곳에서 조리법도 개발을 하고 교육도 진행한다”며 “회의도 하는 다양한 공간이자 이웃집 같은 편안한 ‘이소떡’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커피에서부터 치킨 등 다양한 먹거리 프랜차이즈가 많이 탄생한 대구에서 ‘이소떡’은 전국적으로 체인점을 둔 떡볶이 브랜드이다. 특히 이곳은 17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개발된 각종 소스를 바탕으로 매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는 회사다.

대구 향토 브랜드인 '이웃집소녀떡볶이'(이소떡)

◆떡볶이로 대구를 주름잡다

이소떡의 전신은 ‘신천떡볶이’이다. 회사에 다녔던 김 대표는 지금의 아내와의 결혼을 앞두고 떡볶이 장사에 뛰어들었다. 그는 “보증금 1천만 원에 월 30만원의 세를 주고 가게를 계약했다”며 “그때 빚도 내 가게를 차렸는데 악착같이 생활해 2년도 안돼서 빚을 다 갚았다”고 말했다.

맛이 좋았던 덕분에 손님이 늘어나고 소스를 공급받고 싶다는 가맹문의도 이어졌다. 김 대표는 “슬슬 욕심이라는 것이 생겨나더라”며 “일단 처음 시작한 시지에서 1등 떡볶이집이 되자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가게 떡볶이 맛이 좋았던 탓에 퀵비 1만원을 지불하면서까지 주문을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때 부부는 떡볶이만으로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김 대표는 과감하게 직원을 고용하고 ‘기업형’으로 전환을 했다.

가맹사업을 시작하고 소스도 여러 가지 개발을 했다. 어느 순간 20여개의 가맹점이 생겨났다. 경북 포항은 물론 거제도에서 가맹점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하지만 처음 무심코 사용했던 ‘신천’이라는 이름의 상표권이 문제가 됐다. 상호 분쟁을 겪은 뒤 김 대표는 기존 가맹사업을 모두 접었다.

◆재도전, ‘이소떡’의 탄생

“소송이 끝난 뒤 나만의 이름, 브랜드를 가진 떡볶이 집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장사에만 집중하겠다고 다짐했어요.”

다시 재기를 노린 김 대표는 새로운 이름을 고민했다. 집에서 이것저것 적어봤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웃집소녀’가 생각이 났다. 그는 “좋은 느낌인데 글자가 너무 긴 것 같았다”며 “그때 아내가 줄여서 ‘이소떡’으로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더라”고 미소를 지었다.

마침 첫째 딸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김 대표는 “딸의 모습을 캐릭터로 삼아야겠다고 결심이 섰다”며 “나중에 딸이 커서 이 순간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1호점을 내기로 하면서 김 대표는 전국을 강타할 멋진 매장을 만들었다. 떡볶이가게의 홀 면적만 260㎡(80평)이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당구대와 컴퓨터 5대, 아이들 놀이공간까지 갖춘 165㎡(50평)의 공간이 더 있었다. 말 그대로 ‘떡볶이 카페’였다. 주차장도 있었다.

“하루는 맛집 블로거들이 단체로 이곳에 미팅을 하겠다고 찾아왔어요. 따로 홍보를 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죠.”

이소떡 김범준 대표

◆뒤쳐진 가게 ‘직영’ 전환, 직접 뛰며 매출 올려

처음 브랜드 이름을 정할 때 초등학생이던 딸은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이 됐다. 딸의 성장에 따라 이소떡은 캐릭터의 모양도 조금씩 변화했다. 성장하는 ‘소녀’였던 것이다.

소녀 캐릭터의 성장처럼 떡볶이의 맛도 추가됐고, 메뉴도 늘어났다. 그만큼 가맹사업도 점차 잘됐다. 당연히 김 대표는 가게를 운영하던 사장님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됐다. 가맹점을 관리해야 했고, 좋은 재료를 공급하기 위해서 뛰어야 했다. 직원을 둔 ‘고용자’로 살면서 점차 가게 현장과 멀어지게 됐다.

“어느 날 달서구 용산에 있는 가게의 매출이 꼴찌를 한 것을 봤어요. 그런데 그곳은 위치도 괜찮은 곳이었거든요, 뭐가 문제일까 살펴봤어요.”

김 대표의 결론은 ‘직영’이었다. 이소떡이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게 매출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로 한 것. 5월 인테리어를 바꾸고 직원을 교육시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고용자가 아닌 ‘가게 주인’으로 살았다. 매일 이곳을 출근하며 서빙을 하고 배달도 나갔다. 그는 “매일매일 전단지를 돌렸다. 다리가 아플 정도였지만 아무렇지 않았다”며 “처음 떡볶이를 시작했을 때의 ‘열정’을 다시 느끼게 됐고 지금껏 내가 해온 사업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마침내 하루 매출이 30만원에 불과했던 용산점은 2달도 채 되지 않아 140만원까지 뛰었다. 이소떡 매장 최하위 권이던 가게가 김 대표의 ‘열정’과 만나 상위권으로 도약에 성공한 것.

◆떡볶이로 한류를 이끌어내다

이소떡은 앞일을 위한 준비에도 여념이 없다. 매장에서 즐기는 음식을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제품을 개발, 판매하고 나선 것. 최근에는 대형 마트에 납품까지 성공했다. 그 과정에는 재료에서부터 생산까지 위생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에 있다.

김 대표는 “우리는 해썹(HACCP) 인증을 받은 공장에서 재료를 만들어낸다”며 “포장된 제품 역시 이곳에서 위생적으로 만들어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70여개의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는 이소떡은 앞으로 국내가 아닌 해외로도 영역을 넓힐 준비를 하고 있다. 떡볶이로 한류열풍을 일으키겠다는 것. 김 대표는 “연예인들이 떡볶이를 먹는 것을 보고 외국의 팬들이 떡볶이를 찾고 있다”며 “그런데 해외에서 먹어봤던 떡볶이는 맛이 별로였다. 우리가 제대로 떡볶이 한류를 하려고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다양한 식자재 업체는 물론 여러 전문가들과 의견을 계속해서 나누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이소떡의 성장에는 김 대표의 평소 철학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음식 서비스업은 ‘더 친절하게’가 중요하다”며 “메뉴와 맛에 있어서도 중요하지만 손님의 마음을 잡아내는 ‘서비스’가 뒷받침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용산점을 직영하면서 그는 떡볶이 1인분을 포장 주문하더라도 친절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본사 대표가 남아서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도 보였다.

◆착한 가게로 거듭나는 이소떡

이소떡은 지역사회에 대한 환원도 생각하는 기업으로도 변하고 있다. 이소떡은 최근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사랑의열매 '착한 프랜차이즈' 협약을 맺었다. 이소떡 직영·가맹점 상상수가 자율로 월기부금을 정해 모금에 참여, 소년소녀가장에게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한 것. 또 새로이 가맹 계약을 맺는 청년, 부부 가맹점주에게 가맹비를 비롯해 1천여만원의 비용을 지원한다.

김 대표는 “지역에서 떡볶이 집을 하고 있는데 당연히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부에 좀 더 앞장 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경석 기자 aclass@deconom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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