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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현장] 대구시 수성구 신매시장 ‘목요장터’

기사승인 2023.03.08  16: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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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목요일마다 노점 300여곳 북적, 전통시대 난장 옮겨 놓은 듯

신매시장 ‘목요장터’ 모습. 대구는 물론 경산, 청도, 영천에서 원정을 올 정도로 쇼핑 명소로 발전했다. 한상갑 기자

대구에 전통시장이 자리를 잡은 건 16세기 무렵. 인진왜란 이후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상품 생산이 촉진되고 분업화되면서 고을마다 오일장이 들어서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18세기 무렵 전국엔 1천여 개의 장시(場市)가 들어섰다고 하니 민간에서의 상업·유통이 본격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농촌 공동체를 기반으로 성립된 전통시장은 단순한 거래 수단과 공간을 넘어 구성원 간 정서적으로 유대하고 공동체 문화를 공유하는 사회·문화적 기능까지 수행했다. 이 ‘장터 DNA’는 우리 민족의 풍속으로 전승되며 500년 넘게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전자, 통신, IT산업이 발달하고 유통산업이 발달하면서 거래 방식도 전자거래, 비대면 방식으로 변해갔다. 더구나 홈쇼핑, 인터넷쇼핑, 온라인 마케팅 같은 새로운 유통 방식이 등장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장터 DNA는 더 이상 설 곳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전통시대 유산이 남아 있는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아직도 오일장 풍속이 전승되고 있어 우리 장터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화원, 반야월, 칠곡, 현풍 등 대도시 외곽에도 오일장이 서고 있고, 심지어 ‘대구의 노른자’로 일컬어지는 수성구의 한복판에서도 이런 전통시장이 열리고 있어 유통관계자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대구의 최요지 수성구 한복판에 전통시장을 펼쳐놓았다는 신매시장 ‘목요장터’로 떠나보자.

신매시장 모습. 상인들은 ‘목요장터 덕에 유동인구가 늘어나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2000년 무렵 자연발생적으로 노점 들어서=신매시장에 ‘목요장터’가 들어선 건 2000년 무렵. 당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이미 신매시장(1993년)이 들어서 있었지만 상설시장 외 오일장이나 요일장의 수요가 발생한 것은 ‘시지’라는 지역적 특성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풀이 된다.

즉 시지가 수성구에 포함되어 있지만 경산, 청도 등과 인접해 있어 전통시장에 대한 정서가 아직 살아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도심 외곽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 덕에 유휴지와 넓은 공터를 확보할 수 있었던 점도 장터 출발에 크게 기여했다.

재미있는 것은 목요장터가 들어서는 과정이 자치단체(수성구)의 개입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신매시장 상인회장은 “20여 년 전부터 시장 주변 공터, 대로변에 하나 둘씩 들어선 노점상들이 1~2년 새 큰 장터를 형성했다”고 말한다.

초반에 상인회에서는 ‘노점들이 취급하는 상품(농수산물)이 상인들의 아이템과 겹치고 환경문제 등으로 노점상들을 반대하는 여론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목요장터가 들어선 후 시장에 유입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시장 인지도가 높아져 나중에는 상인들도 이 노점상들을 반기게 되었다는 것.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노점들 30~40%는 채소, 과일상들로 이들이 들어오면 상권이 침해 되는 건 분명하지만 이들 덕에 시장에 활기가 돌아 결과적으로 상생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목요장터 노점상들 모습.

◆목요일마다 대구경북에서 300여 노점상 운집=현재 목요장터에 출입하는 노점은 약 300여 곳으로 추산된다. 노점들은 달구벌대로 바로 뒷편 도로와 고산도서관 골목에 자리를 잡고, 일부는 신매초교 담장 인근에 진을 친다.

노점상들의 절반 정도는 트럭이나 승용차로 이동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노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 노점’들이다.

시장에서 만난 한 한과 노점상은 “요일별로 서재, 반야월, 영천이나 자인장, 화원 등으로 원정을 다닌다”며 “여기 나오는 상당수 노점상들이 대부분 같은 처지여서 다른 장터에서도 수시로 만나 정보를 교환한다”고 말했다.

트럭들이 주요 포인트에 진(陳)을 치면 다음으론 캐노피(천막) 들이 들어선다. 목요장터에 등장하는 캐노피는 약 50여 개로 이들 역시 차로 이동한다. 캐노피 자체가 큰 짐인데다 판매할 화물을 함께 실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캐노피 노점은 보통 3~4팀이 그룹을 지어 함께 움직인다.

채소를 파는 한 할머니는 “주변에 오일장, 요일장을 순회하다 보니 몇몇 노점상들과 함께 움직이게 된다”며 “이런 노점들의 화물과 판매 장비를 전문적으로 실어다 주는 전문 트럭들도 생겼다”고 말한다.

트럭도 천막도 없는 어르신들은 수레나 카트로 물건을 나르고, 돗자리로 약식 매대(賣臺)를 꾸려 물건을 판다. 이들은 봄나물이나 잡곡, 채소 같은 간단한 식품류를 취급한다. 이분들은 노점 생태계(?)에서 최소 단위지만 이들 역시 도매상에서 물건을 떼와 파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초창기엔 집 근처에서 직접 경작한 채소를 팔러 나오는 어르신들이 제법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물건을 도매상에서 떼와 파는 형태로 바뀌었다고 한다.

 

◆상인회-노점상 윈윈 전략으로 상생구도 마련=시지에 ‘신매광장’이 들어서기 전에 신매시장은 신매동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1996년 신매광장이 들어서면서 시장 일대는 점차 부도심으로 전락해 갔다.

이때 상인들의 상실감을 위로해준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노점상들이었다. 처음엔 상권 침해, 소음 문제 등으로 상인회와 노점들 사이 마찰을 빚었으나 목요장터가 들어선 후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유동인구가 3~4배 늘며 시장에 갑자기 활력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도심에 갑자기 들어선 전통시장 퍼포먼스는 지역 아파트 주민은 물론 경산, 청도, 영천 등 경북 지역에서도 원정을 올 정도로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시장상인들은 상권 침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노점상들에게 상생의 손을 내밀었고, 노점들은 유동인구를 늘리고 시장을 일으켜 상인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보답했다.

전통시대 오일장의 공동체 의식이 대구의 도심 신매시장에서 꽃을 피웠으니 이게 바로 전통시장의 정신이 아닐까.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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