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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골목] 대구시 신천동 송라시장 '명태골목'

기사승인 2023.01.12  10: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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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후 피난민들 송라시장 일대서 명태가공으로 생계

전성기 때 신천동 일대에는 200여 가구에서 명태 가공 일을 할 정도로 성업을 이루었다고 한다. 송라시장 주택가에서 어르신들이 명태를 손질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국수골목, 오토바이골목, 국밥골목, 족발골목... 대구에는 이런저런 골목들이 많다.

골목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적당한 규모(군집성)와 전문성이 있어야한다. 특정 메뉴 식당가들이 도열을 하고 있어도 맛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골목 네이밍을 얻지 못하고, 전문상가 몇 곳이 아무리 성업 중이라도 규모를 갖추지 못하면 역시 골목 이름을 얻지 못한다.

대구 신천동에 ‘명태골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6·25한국전쟁, 해방, 산업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번창했다가 지금은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태골목은 한국전쟁 후 피난민들의 생계를 담보한 생존의 현장이자, 40년 넘게 신천동 일대 주민들을 먹여 살린 생업의 현장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숱한 애환 속에서 신천동에 큰 추억거리를 남긴 송라시장의 명태골목으로 들어가 보자.

◆신천동 주택가 아직도 명태 가공일로 부업=송라시장 취재 중에 명태골목, 명태촌의 흔적 추억과 만날 수 있었던 건 큰 성과였다.

시장 취재 중 마침 건어물 가게가 있어 ‘혹시 옛날에 명태골목이 남아 있느냐’고 물었더니 ‘동산교회 앞이나 송라아파트 인근으로 가보라’고 귀띔해주었다.

송라시장 북쪽 일대는 지금은 주택가로 변했지만 2006년 시장 현대화 이전에는 시장 점포들이 있었던 곳이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40~50년 전 현재 동산교회, 송라아파트 일대 주민들은 모두 명태 가공일을 했다’고 나와 있다. 대략 200여 가구에서 가내수공업으로 부업 또는 전업을 한 셈인데 가구당 3~4인 대략 600~800여명이 이 일에 매달린 것으로 보인다.

거리엔 하루 종일 생선을 실어 나르는 리어카, 화물차들이 붐볐고 골목엔 짭짤한 명태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골목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명태껍질과 부산물들이 널려 있었다. 그중 문이 열린 한 가게를 노크하니 70~80대 어르신 세분이 명태를 다듬고 있었다. 점포 구석엔 명태를 두드려 넓게 펴는 기계 한 대가 놓여 있고 창고엔 명태 상자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할아버지 한분이 기계를 이용해 명태를 두드려 넓게 펴면 할머니 한분이 명태껍질을 벗겨 대충 다듬고, 나머지 한분이 배를 따서 속을 다듬는 방식이었다.

옛날에는 명태를 일일이 망치로 두드려 작업을 했지만 요즘은 기계로 대신해 작업이 훨씬 수월해졌다.

할아버지는 “전성기 때 하루 500마리씩 다듬느라 엉덩이를 뗄 시간도 없었다”며 “주문이 밀리면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철야작업을 할 정도로 바빴다”고 말했다.

◆지구 온난화로 명태 사라진 후 일감 실종=50년 넘게 이 작업을 해왔다는 어르신들은 ‘화물트럭이 수십 대씩 오가던 시절은 가고 이제 10여 곳만 남아 겨우 용돈벌이를 하는 수준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이 몰락한 데다 동해에서 명태가 자취를 감춘 후 물량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태골목이 쇠퇴한 이유는 점차 흐릿해지는 제사의식이다. 옛날에는 ‘끼니는 걸러도 제사상응 차린다’는 의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선조 기제사를 명절에 몰아서 하는 등 축소, 생략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 제사 음식을 현실에 맞게 개량하는 추세도 명태촌의 쇠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煎), 돔배기, 북어포 같은 비선호 음식을 생략하고 치킨, 피자처럼 고인, 가족들 식성 위주로 올리는 가정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으니 재료는 모두 러시아산을 쓴다. 서문시장 도매상들이 대관령이나 속초의 덕장에서 러시아산 명태를 들여와 1~2주에 한 번씩 배달 해준다.

저온창고에서 보관된 명태는 수시로 송라시장으로 넘어와 가공작업을 거친 후 도매상들에 의해 전국으로 납품된다.

옛날에는 얼려진 명태를 물에 담가 해동(解凍)한 후 포(脯) 작업을 하고 다시 말리는 등 공정이 복잡했으나 요즘은 훨씬 작업 과정이 단순해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다듬어진 명태는 전량 서문시장 건어물가게로 납품된다. 가게 한켠에 수북이 쌓인 명태들.

◆“어르신들 사라지면 명태골목도 역사 속으로”=노인 셋이 달려들어 종일 작업하면 200~300마리를 손질하는데 골목에 열 곳이 있다면 하루 생산량은 하루 2000~3000마리 쯤 된다.

옛날에는 기술 좋고 손이 빠른 젊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모두 골목을 떠나고 이젠 70~80대 어르신들만 남아 쉬엄쉬엄 작업을 하고 있다.

서문시장의 한 건어물도매상은 “송라시장 명태골목엔 아직도 솜씨 좋은 어르신들이 많아 믿고 물건을 맡길 수 있다”며 “연세는 드셨지만 수십 년씩 해온 일이라 손의 감각이 따라줘 마감 작업이 깔끔하다”고 말한다, 그나마 이 어르신들이 계셔서 믿고 일감을 맡기고 있지만 이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어디에 일을 맡길지 막막하다는 것.

거친 명태를 손질하다보면 손에 가시도 박히고 온 손이 상처투성이지만 평생 해온 일이라서 손에 익고 번 돈으로 손자들 용돈 주는 재미에 모든 시름을 잊는다.

신천동 일대 비린내를 풍기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송라시장, 한 때 전국의 상인들을 시장으로 불러들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명태도 사람들도 모두 사라진 골목에 어르신들의 북어포 다듬는 소리만이 골목을 울릴 뿐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저작권자 © 디지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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