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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경북 전통시장] (36)경산 자인시장

기사승인 2022.08.31  15: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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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面) 단위 오일장에 유동인구 1~2만명, 부산·포항서도 ‘원정’

경산 자인시장 장날 유동 인구는 1~2만명을 헤아릴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자인시장 입구 모습. 한상갑 기자

고대 경산에는 압량(押梁), 압독(押督)으로 불리는 소국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옆 자인(慈仁)에도 ‘노사화국’(奴斯火國) 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 전통시장 방문지는 옛 노사화국 전통이 서려있는 경산 자인시장으로 정했다.

이번에 자인시장을 취재하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눈에 띄었다. ‘경산 자인에 신라시대부터 시장, 노점이 있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물론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엔 ‘왕경에 시장을 열어 사방에 물품을 유통하게 했다’는 기록과 ‘509년에 왕경에 동시(東市)를 설치했고, 695년에 서시(西市), 남시(南市)를 더 두었다’는 등 시장과 관련한 기록들이 자주 보인다.

조사 결과 고대 자인에 전통시장이 있었다는 사료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고대국가 시절자인의 옛 전통과 역사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이런 구전(口傳)이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런 자료가 전해지는 데는 분명한 이유와 근거가 있을 터, 필자는 그 근거를 경산 최고(最古)의 민속축제인 ‘자인 단오제’에서 찾는다.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전통 민속축제인 자인 단오제는 굿과 여원무(女圓舞), 행렬, 씨름대회 등 민속 연희가 연이어 펼쳐지는 마을 축제였다.

잘 알려져 있듯 축제는 사람이 모이는 행사이고 이런 대규모 인파의 집중은 자연스럽게 시장과 연결된다. 유럽의 카니발, 페스티벌 등 축제가 골목시장, 벼룩시장 등 전통시장과 함께 열리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고대에 시장을 열어 주민을 윤택하게 했다는 자인시장으로 떠나보자.

자인시장은 먼저 옛날 장옥(場屋) 시설들이 일부 남아 있어 어르신들의 장터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가 많다.

◆신라시대 자인 단오제 열릴 때 장터도 함께 열린 듯=자인의 옛 지명 ‘노사화’를 이두식으로 풀어보면 ‘넓은 들’을 뜻하는데 신라시대부터 이 지역이 오목천 유역의 넓은 평야를 기반으로 도시 기반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자인 단오제는 신라시대부터 전승되고 있는 마을 축제로 마을의 수호신인 한(韓) 장군에게 ‘한묘제’(韓廟祭)를 올리고 굿, 가장행렬, 여원무, 팔광대, 씨름, 그네 등 민속놀이를 즐긴다.

아마 ‘신라시대 자인에 시장이 열렸다’는 구전자료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고대는 물론 현대에서도 축제에는 항상 장터가 함께 따라 다닌다. 축제 현장에서 시장은 술과 음식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희생 제물로 쓰인 고기를 함께 나누는 의식의 장소인 동시에 지역의 특산물을 거래하는 유통의 수단이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관광지에 야시장이 열리고 유럽의 관광지 뒷골목에 번개시장, 벼룩시장이 열리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자인단오축제에서 씨름, 그네타기, 가무, 광대놀이 등이 펼쳐졌다면 현장엔 상당한 규모의 시장, 난전이 함께 열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사 이야기’를 쓴 이우각 씨는 “신라시대에는 왕경의 경시(京市) 외에도 지방의 성읍 중심지나 교통 요지에는 향시(鄕市)가 생겨나 수요자와 공급자가 주로 물물교환 형태의 교역을 펼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자인의 교통, 경제적 위상은 조선시대 와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 문서에도 ‘자인 읍치(邑治)를 담당하던 치소(治所) 부근에 산역(山驛)이 있어서 남북으로 하양과 청도를 연결했고, 동서로는 경주와 경산을 연결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후기 ‘증보문헌비고’ 와 ‘자인총쇄록’ (慈仁叢鎖錄)등에 의하면 ‘자인현에는 매 3, 8일에 읍내장이 열렸다’는 기록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자인시장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경산 지역의 최대 규모 정기시장으로 성장했는 기록들이 보이는데 이는 당시 경부선이 통과하던 경산역 일대가 경산 상권의 중심이었으므로 다소 과장된 내용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자인시장은 시장 외곽에 우시장까지 거느리며 1970~80년대 경산시, 하양과 함께 경산의 주요 상권을 형성했다.

자인시장의 공식 개설은 1969년 10월이다. 당시엔 1만7877㎡에 점포도 171개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55곳의 상설점포가 운영 중이다.

대기줄 1~2시간을 자랑하는 간갈치 전문점 은호수산.

◆맛집들, 대를 이어온 점포들이 시장 전통 이어와=추석 대목, 5일장을 맞아 취재팀은 자인시장을 찾았다. 제일 먼저 시장 주변 대로변과 주차장에 빽빽히 들어 산 차들이 취재팀을 맞았다. 사실 면(面) 단위 시장에 이런 인파가 몰리는 것은 처음이어서 다소 낯설었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시장에 들어서니 자인시장에 사람이 몰리는 현상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먼저 주변 농가에서 재배한 제철 과일, 농산물들이 노점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가격이 너무 저렴했다. 인근 공장에서 생산한 값싼 생필품들도 좌판에서 장꾼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훈훈하고 정겨운 장터 분위기가 느껴졌다.

자인시장 장날 유동 인구는 1~2만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시장상인회 김종기 회장은 “자인시장은 먼저 옛날 장옥(場屋) 시설들이 일부 남아 있어 어르신들의 장터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가 많다”고 말한다.

자인시장을 명소로 도약시킨 건 또 있다. 시장 규모에 걸맞지 않은 다양한 맛집들이다. 먼저 자인시장엔 옛날 우시장 시절의 전통을 달린 국밥집, 식육식당이 잘 발달해 있다. 한 식당주인은 “자인시장엔 옛날 우시장 시절부터 전통을 이어온 맛집들이 많다”며 “메뉴도 각자 특기를 살려 돼지국밥, 소머리국밥, 곰탕, 소고기국밥 등으로 다양화했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40년 전통의 ‘삼정콩국수’ 자연산 물고기를 쓴다는 ‘용성어탕국수’ 등 맛 맛집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시장 상인들은 오늘날 자인시장을 입게 한 일등공신으로 갈치 전문점 ‘은호수산’을 든다. 3대째 40년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 점포는 간갈치로 유명하다. 소금 간을 한 13~14마리 한묶음에 1만원밖에 하지 않는다. 덕분에 가게 앞엔 문을 열자마자 대기 줄이 늘어선다. 주말에 장날이 겹치는 날이면 부산·포항서도 ‘원정’을 오기도 한다.

장날엔 보통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겨우 갈치를 구할 수 있다. 대구에서 왔다는 한 시민은 “10년 넘게 시장에 와서 갈치를 사 간다”며 “적당한 숙성과 주인 소금간 비법이 어울려 묘한 맛을 낸다”고 말한다.

주인 최석윤 씨는 “사실 이렇게 긴 줄이 서지만 갈치로는 큰 이익이 남지 않고 선친이 해온 유업이기에 일종의 봉사 개념”이라며 “대신에 손님들이 돔배기나, 조기, 제수용품을 함께 구매해주는 덕에 그걸로 수지를 맞춘다”고 말한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1천년 역사를 이어온 자인시장은 면(面) 단위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유동인구나 거래 액면에서 웬만한 읍(邑), 군 단위 시장과 맞먹는다. 이런 덕업(德業)이 그냥 얻어진 게 아니라면 이건 상인들과 지역사회의 끊임없는 노력 덕일 것이다.

선친의 가업을 이어 원가 수준으로 생선을 파는 따뜻한 상혼, 우시장 시절 국밥집 전통을 말없이 지켜온 상인들과 지역 상권을 지켜 온 주민들의 애정이 있었기에 오늘 날 이런 시장의 번영이 가능했을 것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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