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문화 & 피플] 경주 건천대장간 유종태 대표

기사승인 2022.06.16  16:16:23

공유
default_news_ad1

- “전통 대장간 명맥 이어야죠” 2대째 77년간 건천시장서 담금질

경주 건천대장간 유종태 대표가 대장간에서 작업 공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상갑 기자

인류가 문명 발달 과정에서 가장 늦게 사용한 금속은 철(鐵)이었다. 철의 녹는점은 1,538도로 원시시대 이런 고열을 내는 용광로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전 전통시대 철기의 제작과 생산은 대장간이 담당했다. 이들은 각각 마을이나 장터에 배치돼 필요한 농기구나 생필품을 생산했다.(지금으로 치면 하이테크단지 좀 될까)

산업화시대 들어와 제철, 철강산업이 발달하면서 마을과 골목에 대장간들은 하루아침에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대장간에서 1시간에 하나씩 만드는 호미가 같은 시간 공장에서 수천 개씩 찍혀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성, 효율성 면에서 대장간 가치는 그렇게 높지 못하다. 그럼에도 전국에는 대장간 전통을 잇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곳이 많다. 경주 건천시장의 유종태 대표도 그 중 하나다. 문명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철기시대를 구현하고 있는 경주 건천시장 대장간 유 대표를 만나 보았다.

◆1946년 대장간 개업, 2대째 77년 역사=나이 50을 넘긴 유종태 씨에게 대장간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생계수단으로서 외, 아버님의 유훈을 지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풀무소리에 잠이 들고 망치소리에 잠이 깨는, 삶 자체가 대장간이었다. 놀아도 대장간 마당에서 놀았고, 쉬어도 선친의 망치질을 지켜보며 쉬었다.

선친 유기배 씨가 건천시장의 대장간을 연 것은 해방 직후. 그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생계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선친의 솜씨는 근방에 소문이 나서 대장간은 늘 손님이 북적거렸다. 영천과 안동, 구미에서도 단골이 찾아올 정도였다. 새벽부터 나와 일해도 주문량을 맞추기 어려웠으니 어릴 때부터 어린 종태 씨는 대장간에 나와 아버지를 도와야 했다.

어느덧 연로하신 선친이 돌아가시자 2007년부터 유 대표가 대장간 일을 맡게 되었다. 가업으로는 2대째, 햇수로는 77년째이다.

대장간에 자신의 이름을 걸었으니 이제 자신만의 컬러를 입히고 싶을 만도 하지만 현재 대장간은 아버님이 사업하시는 20년 전 그 순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집게, 망치, 모루부터 풍로, 선풍기까지 모두 아버님이 쓰시던 물건입니다. 먼지가 묻고 녹이 슨 아버님 안경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선친의 손때 묻은 연장들을 곁에 두면 마치 아버님이 옆에 계신듯 편해진다고 말한다.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유종태 대표.

◆대부분 대장간 작업은 전통 방식, 수작업으로=대장간은 70년의 세월이 비껴간 듯 옛날 연장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엔 시간에 더께인양 먼지·거미줄이 처져있다.

이런 연장 외 화덕 같은 집기들도 개업 당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70년 대장간 역사를 지켜 오는 건 또 있다. 바로 대부분의 작업 공정이 전통 방식인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전기나 모터의 힘을 빌려 효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유 대표는 굳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그는 “요즘 웬만한 대장간은 가스 불, 전동해머에 밀링, 선반, 프레스 등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가끔씩 힘이 들 때면 자신도 이런 유혹에 빠지지만 이 내 선친의 정도(正道)경영을 떠올리고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유 대표의 고집스런 작업 방식 덕에 그의 칼은 절삭력이 뛰어나고 강도가 세기로 소문이 났다. 그의 칼은 가정집 주방 칼보다는 육가공업체나 횟집, 수산물가공 쪽에서 훨씬 인기가 높다. 가공물 특성이나 작업 환경에 맞춰 연장 형태, 강도, 무게 등을 조절해주기 때문이다.

그가 개발한 칼 중에 과메기칼, 횟칼은 영덕, 흥해, 영해, 포항 등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상인들의 요구와 작업 특성을 잘 반영해 주문 방식으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명성 덕에 그의 대장간은 20년 단골은 셀 수도 없고 30년 단골은 돼야 단골 대접을 받는다. 선친 대에 칼을 사가던 단골들이 그대로 거래를 이어 가는 경우도 상당수다.

2021년 12월 포항제철소가 경주 건천대장간에서 혁신허브 QSS활동을 끝내고 현판식을 하고 있다. 포스코 제공

◆선친 뜻 이어갈 것...지역 인간문화재 등록이 꿈=건천대장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주문 제작이 많다는 점. 주문제작은 철가공의 전반 기술이 뒷받침돼야 해서 웬만한 대장간은 시도하기 힘든 영역이다.

어떤 손님들은 직접 설계도를 그려와 제작 의뢰를 하기도 하고 어떤 업체에서는 쇠를 직접 가져와 구체적인 작업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 번은 심마니가 약초용 연장을 주문 한 적이 있습니다. 가벼우면서도 땅을 잘 파야 되고 적당한 초목 컷팅(cutting) 기능도 있는 기구를 요구했어요. 궁리 끝에 산속 약초 채취에 최적화된 도구를 만들어 전달했죠.”

얼마 후 약초꾼은 이 연장으로 산삼을 캤다며 약초를 선물로 가져왔다.(그 후 그는 동료들을 데리고 나타나 단체 주문을 하며 지금도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문화재 복원기관이나 발굴단체들도 그의 오랜 단골이다. 고분에서 발굴품이 나오면 이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야 하는데 한 두번 일을 맡겨 본 기관에서 유 대표를 고정 파트너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건천대장간은 포스코와 QSS 협약을 맺었다. 포스코가 대한민국 ‘K-호미’ 응원에 나서며 건천대장간 지원에 나선 것이다.

포철혁신지원센터는 대장간 내 리모델링 작업은 물론 호미, 칼을 만드는데 필요한 강판을 제공했다. 또 앞으로 건천대장간이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농기구 팔아주기, 강판 무상 제공 등 지원활동을 계속 해나갈 예정이다.

그의 탄탄한 기술력과 2대를 이어온 전통 덕에 대장간은 몇차례 언론에 소개되며 어느 정도 자립 경영의 기반을 닦았다.

이제 유 대표의 유일한 희망은 대장간 관련 ‘지역 문화재’로 등록되는 것이다.

“선친도 50년 넘게 쇠를 두드렸지만 끝내 이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선친의 못다이룬 꿈을 향해 한발한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꿈을 이루게 되겠지요”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저작권자 © 디지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기획탐방

set_C1
default_side_ad2

동영상 뉴스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