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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피플] 대구시 대봉동 ‘길영LP카페’ 도길영 대표

기사승인 2022.01.21  15: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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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음악감상실 향수, LP음악에 실어 전해드려요

‘길영LP카페’는 1980년대 음악감상실을 그대로 재현한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뮤직박스에서 신청곡 쇼를 진행하고 있는 DJ 도길영 씨. 한상갑 기자

김광석 거리 동쪽 끝자락 조그만 이층카페. 창문 너머 빈 가지만 남은 가로수들이 힘겹게 겨울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그 옆 신천대로엔 ‘세상 일’에 바쁜 차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움직인다.

카페주인 도길영 씨의 손끝에서 카트리지가 LP 판에 얹혀진다. ‘찌지직~’ 거친 마찰음이 카페를 울리더니 이내 카펜터스의 ‘탑 오브 더 월드’(Top Of The World)가 홀 안에 맑게 울려 퍼진다. 중년의 DJ는 커피 한잔을 내리고 오후 장사 준비해 나선다.

대봉동에 ‘길영LP카페’는 대구의 마지막 DJ 도길영 씨가 운영하는 음악 감상실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시내 몇몇 곳에 음악감상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일부는 라이브카페나 다른 업종으로 ‘전향’하고 일부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코로나-19의 우울한 바이러스에 좌절하지 않고 희망의 음악을 울리고 있는 ‘길영LP카페’ 도길영 씨를 그의 카페에서  만나보았다.

-코로나-19 발생 2년째를 맞았다. 카페 운영은 잘 되고 있나?

▶직원들 다 내보내고 혼자 청소부터 홀서빙, 메뉴 준비, 신청곡 소개, 곡 해설까지 다하고 있다. 우리 같은 카페는 늦은 저녁 장사다. 김광석 거리에서 1차를 하신 분들이 잠시 들러 차 마시고 음악 듣는 자리인데 영업시간을 오후 9시로 묶어 버리니까 매출이 70~80% 떨어졌다. 매달 적자를 감내하며 힘겹게 버텨 나가고 있다.

-옛 음악감상실 세대는 5060들인데, 카페를 찾는 주된 고객층은?

▶고객층이 뚜렷이 나뉘진 않는다. 전 연령층이 조금씩 오는 편이다. 포털에 ‘길영LP카페’ 소개 글이 많이 떠다니니까 기사를 보고 호기심에 찾는 젊은층들이 많다. ‘응답하라 1988’이 방영되던 2016년 무렵에는 20대 손님들이 많이 찾았다. 부모님 세대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당시 유행하던 레트로(복고) 감성 덕 이었던 것 같다. 50~60대 손님들이 옛날에 음악감상실 추억을 느끼기 위해 찾는 경우도 많다. 그분들은 리퀘스트(음악 신청), 사연신청, 곡 소개·해설 등 음악감상실 문화를 잘 아는 분들로 당시 문화, 추억을 그대로 공유한다. 이분들의 방문이 나에겐 제일 반갑고 힘이 된다.

-음악감상실 이라면 음질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어떤 오디오를 쓰고 있나.

▶LP음악은 CD음이나 테이프보다 자연음, 원음에 훨씬 가깝다. 음성 신호가 순간순간 증폭을 하기 때문에 소리 왜곡도 훨씬 덜 하다. 오디오는 미국산 ‘매킨토시 MC7300’을 쓴다. 깊은 소리를 잘 구현하는 명기(名器)로 유명하다. 좋은 소리 구현을 위해 이런저런 비용으로 1천만원 쯤 투자했다. LP는 4,500장 정도를 가지고 있다. 집에도 이정도 분량이 더 있지만 가게 공간 때문에 대중적인 음반을 선별해 비치했다.

-김광석 거리를 카페 자리로 선택한 이유는.

▶카페를 열기 전에 주유소 컨설팅업을 해서 상권에 대한 안목이 있는 편이다. 2016년 무렵 친구와 이 골목에 놀러 왔다가 이 집을 봤는데 한 눈에 반했다. 주인한테 ‘LP카페를 하고 싶다’고 전화를 했더니 그날로 임대 계약서를 써주었다. 내가 연락하기 전 이미 임대 문의전화가 80통 넘게 왔었지만, 집주인은 업종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거절하고 있었다고 한다. 옛날 살림집 자리를 리모델링 했더니 길쭉한 열차 모양 공간이 나왔다. 창가에 앉아서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면 마치 기차 여행을 하는듯한 감성에 젖어들 수 있다.

대봉동 ‘길영LP카페’ 도길영 대표.

-코로나 이전에는 DJ쇼, 라이브 공연도 했다고 들었다.

▶가수 김광석, 동물원과는 20대부터 친분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김광석 씨가 당시 동아쇼핑 파랑새홀에서 공연을 하면 같이 포스터 작업도 하고 밤에 술 한잔하며 음악 얘기를 많이 나누기도 했다. 그 덕에 지역 통기타 가수들과 두루 사귈 기회가 많았다. 개업 초기에는 매일 밤 8시 30분부터 DJ쇼나 라이브 공연을 많이 열었다. 요들송 가수 소담, 가수 김동식, 배재혁 씨 등이 가끔 출연해 팬들과 소통했다.

-전성기 때는 연예인 급 인기를 능가했다던데.

▶1981년 포정동 ‘목마다방’에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바로 자리를 잡으면서 하루 5~6군데를 출연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대학가, 다운타운가에서 프로를 진행하면 신청곡과 함께 많은 선물들이 창구로 배달된다. 커피, 담배부터 지갑, 벨트에 속옷까지 들어온다. 당시 인기 DJ들은 심야 프로그램이 끝나면 여성들에게 납치(?)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음악감상실은 1990년대 초반까지 명맥을 유지해 하다가 2000년대 DJ DOC, 쿨, 룰라 같은 댄스가수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힘도 못쓰고 무너져 버렸다.

-코로나 19가 당분간은 맹위를 떨칠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엊그제 코로나 상륙 2년째를 맞았다고 들었다. 모든 자영업자들이 그렇듯 영업시간 제한이 빨리 풀리는 것이 급선무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각박한 세상에서 시민들이 음악 한 곡 듣는 여유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잡혀서 1990년대 레트로 감성을 공유하는 세대들이 마음 놓고 차 한잔에 음악을 나누는 세상이 빨리 돌아오길 기대한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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