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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영남 전통시장] ㉘대구시 남구 영선시장

기사승인 2021.03.01  22: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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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선못 향수 간직한 5일장터...지금은 남구의 도심 상권으로 우뚝

영선못 터 위에 설립된 영선시장은 한때 우시장이 들어설 정도로 규모를 자랑했다. 한상갑 기자

슈피리어호, 미시간호, 휴런호, 이리호, 온타리오호...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부에 있는 다섯 개의 호수군(群)을 말한다. 면적만 24만5000k㎡에 달하는 이 오대호는 주변에 시카고, 밀워키,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토론토 등 대도시를 거느리며 미국, 캐나다 동부 도시의 젖줄이자 내륙 수운(水運)의 요충지로 작용하고 있다.

‘물의 도시’하면 대구도 빠지지 않는다. 조선 후기에 발간된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엔 98개의 저수지와 83개의 보(洑) 이름이 나온다.

고대부터 대구를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던 호수들은 산업화, 도심 개발에 밀려 하나씩 메워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천왕당못 자리를 메운 서문시장과 영선못을 매립하고 만든 영선시장이다.

영선못은 당시 규모만 2만여 평으로 수도산 일대 농경지 수원(水原)으로 기능 하다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1940년대 완전히 매립되었다. 80년 전 못 터였던 그 자리엔 영선시장이 들어서 시민들에게 추억과 향수를 선물하고 있다.

◆시민들의 뱃놀이, 낚시터로 사랑 받았던 영선못=‘영선지’ 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건 1924년 동아일보 기사. 당시 동아일보는 영선지를 달성공원과 함께 대구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의 원로화가인 최계복 선생이 1933년에 찍은 ‘령선못의 봄’ 사진을 보면 수양버들을 배경으로 못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상춘객들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못둑엔 막걸리와 국밥을 파는 주막이 들어서고, 참나무와 벚꽃이 무성했다고 한다. 기사로만 추측해 본다면 일제시대에는 영선못이 비교적 교외에 위치해있던 수성못을 제치고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같다. (수성못은 비슷한 시기인 1927년에 준공되었다.)

영선못은 시내에서 가깝고 수량이 풍부해 시민들의 뱃놀이 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또 면적도 넓어(2만평) 여름에는 낚시, 수영 장소로, 겨울에는 썰매, 얼음지치기 장소로 유명했다.

대구 원로화가인 이경희 화백도 영선못에서 겨울에 썰매를 타던 일과 빙상대회에 참가한 일을 회고하곤 했다.

◆한 때 우시장 들어설 정도 상권 형성=뱃놀이, 낚시를 즐기던 영선못에 시장이 들어선 건 1970년대. 당시 수도산 밑자락으로 주택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자료가 없어 시장규모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영선못 매립 터가 워낙 넓었던 데다 주변에 택지가 급속도로 들어섰던 것으로 모아 상당히 큰 상권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우시장이 들어설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고, 시장 주변엔 소인부, 상인들을 위한 국밥집, 술집이 성업했다고 한다.

영선시장과 관련해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군부대 시설과 인연이다. 일제시대 못 주변엔 일본군 보병80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일제시대엔 못 이름을 ‘영선’(營繕)으로 불렀는데 있는 ‘병영 수선’의 뜻으로 군 주둔지의 목적을 나타낸다. 일제가 ‘영선’(靈仙)이라는 멋스런 이름 대신 지극히 실용적인 이름으로 고쳐 쓴 것은 대구 전통과 문화를 비하하려는 의도로 비쳐진다.

해방 후 일제가 쫓겨간 자리엔 미8군의 캠프헨리와 캠프조지가 들어섰으니 영선못과 군부대는 무언가 피할 수 없는 인연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영선시장은 도심 입지에 맞춰 반찬가게, 양곡, 야채·과일, 축산, 생선 등 식료품을 주로 배치해 주민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야채, 과일, 축산 등 도심형 시장으로 변신=1976년 정식으로 문을 연 영선시장은 현재 125개의 점포를 거느린 중형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초기엔 하나치킨, 영선떡방, 영선시장닭발집이 있는 골목사거리가 시장의 중심이었으나 서편 대로변에 대형 시장입간판을 세우며 규모가 확대되었다.

‘영선시장닭발’을 운영하는 한상기 씨는 “원래 시장이 있던 가축시장 자리는 시에서 택지로 분양해 아파트가 들어섰다”며 “택지개발 이후 시장이 서남쪽으로 조금씩 밀려나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25일 취재를 위해 시장을 둘러보니 도시화, 현대화에 밀린 전통시장의 쇠락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인 것 같았다. 주변에 교대역동서프라임, 교대역월드메르디앙, 보성상아맨션 등 대단지 아파트를 끼고 있음에도 상권을 떠받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상인회는 아파트 단지 입지 특성을 살린 아이템 배치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상인회 관계자는 “도심 주부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반찬가게, 양곡, 야채·과일, 축산, 생선 등 식료품을 주로 배치해 아파트 주부들을 유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선시장에 인기 품목은 바로 떡집. 시장 중심가를 따라 일화가2호점, 동경떡집, 영선떡방이 떡전을 펼치고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염매시장은 혼수떡으로, 영선시장은 사찰 납품 떡으로 특화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영세해져 그런 구분도 희미해진 것 같았다.

이 우울한 시장 분위기를 일거에 날리며 최근 가장 핫하게 뜨는 곳이 영선시장닭발이다. 보통 닭발요리는 닭발을 바로 먹지만 이곳은 닭발과 매콤한 국물을 결합한 것이 특징.

포털에 올라온 마니아들의 반응을 보면 ‘한신포차 닭발’ 등과 함께 대구에 ‘3대 닭발’ 중 하나로 추천하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취재 중 만난 한 20대는 ‘매운맛에 중독 돼 한 두 번 시켜 먹다 보니 어느새 ‘인생 닭발’이 되어버렸다’고 소감을 말했다. 계란찜, 김가루 주먹밥, 중화제 쿨피스를 추가해도 2인 기준 2만원 대면 충분하다.

‘신령스런(靈) 신선(仙)’의 뜻을 가진 영선시장은 한때 가축시장까지 둘 정도로 성업하며 대구 남부 중심지로 이름을 날렸다. 점차 서문시장, 칠성시장 등에 상권을 내주었지만 지역민들에게 영선못 추억을 공유하며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그래도 30년 역사와 시장 전통을 이어오며 대구 남부에서 도심형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그 이름값은 하고 있는 셈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저작권자 © 디지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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