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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피플] ‘빵장수 쉐프’ 박기태 대표

기사승인 2020.08.06  19: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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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세 가출 소년 연 100억 매출 신화 주인공으로

피쉐프코리아 박기태 대표가 장기동 본점에서 기자에게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고 있다. 한상갑 기자

전국 3대 빵집 하면 군산의 이성당, 대전의 성심당 그리고 안동의 맘모스제과를 든다. 풍미도 뛰어나지만 대를 이어 전통을 이어 간다는 점에서 맛을 넘어서는 소명의식까지 느끼게 된다.
‘빵’ 하면 대구에도 숨은 명문가들이 많다. 삼송빵집, 반월당고로케 등 지역 제과점들이 명품 빵을 넘어 전국적인 브랜드로 명성을 키워가고 있다.
근래 제빵과 관련해 대구에서 가장 ‘핫’ 한 사람은 ‘빵장수 박기태 쉐프’다. 지난 달 2일 대구에 제과제빵 분야에 단 두 명뿐이라는 ‘달구벌 명인’이 되었고, 지금도 한국을 대표해 지구촌을 누비며 한국 제과·제빵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전국 4대 빵집을 목표로 부지런히 반죽을 빚고 있는 박 대표를 ‘빵장수 쉐프’ 장기동 본점에서 만나보았다.

◆빵과의 만남=박 대표와 빵과의 첫 만남은 중2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출을 일삼던 박쉐프는 ‘밥만 먹여 달라’고 찾아간 빵집에서 운명처럼 빵과 조우했다. 14세 어린 나이에 배고픔을 잊기 위해 만난 빵, 박 쉐프는 이때 빵과의 만남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5년 뒤 19살에 대구 감삼동에 첫 빵집을 열었다. 이어 만촌동, 영남대 앞에서 제과점, 케이크 전문점을 오픈했다. 그의 20대 명함에는 ‘잘 나가는 점주’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이 반짝 성공도 잠시, 27세 때 그는 그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한 사건과 만나게 된다. 지인이 제과제빵재료 도매상을 제의 한 것. 당시 빵 굽는 일에 싫증도 나기 시작했고, 그럴듯한 ‘대표 명함’도 하나 가지고 싶었기에 별 생각 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때부터 그의 사업은 추락을 거듭했다. 반복되는 실패만큼 그의 인생도 망가져갔다. 대형마트 입점 등 여러 가지 도전을 계속 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좌절뿐이었다. 14년 간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이젠 그만 내려놓고 싶다’는 극단의 유혹에 시달렸다. 수면제를 털어 넣고, 손목을 그으며 막바지 골목으로 몰리고 또 몰렸다.

2017년 프랑스에서 열린 월드페이스트리컵 국가대표로 출전한 박기태(오른쪽에서 두 번째) 쉐프,

◆지인들 도움으로 재기=끝 모를 추락 속에서 40대를 맞은 그에게 어느 날 희망의 빛이 날아들었다. “동인동에 빵집이 하나 매물로 나왔는데 위치나 조건이 너무 좋은 거예요 이 집은 100% 성공한다는 확신이 들었고 바로 계약을 해버렸죠” 물론 거기엔 그의 제빵 실력과 품성을 믿고 아무 조건 없이 돈을 빌려준 그의 지인들이 있었다.
2013년 중구에 ‘빵장수 쉐프’라는 상호로 베이커리 전문점을 오픈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더 이상의 실패를 겪고 싶지 않았기에 박 쉐프는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빵 굽는 일에 집중했다. 최선을 다한 만큼 보상도 주어졌다. ‘빵맛이 기가 막히다’는 소문이 돌며 매상이 300~500만원을 찍기 시작했다. 옛날에 실패했던 기억들을 복기(復棋)하며 빵맛과 서비스와 마음가짐을 바로 세워 나갔다.
14년간 그를 극단으로 몰아갔단 재료도매상 사업 실패도 어느새 반면교사로 작용해 사업에 도움이 되었다. 재료에 대한 선별력과 배합 기술이 더해져 빵의 품질이 업그레이드 된 것.
“보통 제과점에서 200여 가지 재료를 쓰는데 전 5천 가지 이상의 재료를 파악하고 있어요. 영양은 물론 산성, 알칼리성의 균형까지 배합에 응용하고 있습니다. 재료, 원료를 알고 배합하면 맛, 영양, 풍미가 좋아질 수밖에 없죠.”
이렇게 궤도에 오른 '빵장수 쉐프'는 '빵장수 단팥빵' 등으로 체인점이 늘어나며 피쉐프코리아라는 법인으로 성장했다.

‘빵장수 쉐프’ 장기동 본점 내부 모습.

◆위기를 기회로=피쉐프코리아는 빵장수꽈배기, 이탈리안쟈빠따, 보피카페 등 대구 12곳을 비롯해 전국에 70여 개 매장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탄탄대로를 걷던 그에게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인류의 재앙 코로나 사태 앞에서 매출이 급락했던 것. 반토막이면 어떻게든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90%이상 매출이 날아가면서 박 대표는 다시 한 번 좌절에 빠졌다.
코로나19 대혼란 속에서 박 쉐프는 또 하나의 승부수를 준비했다. 투자 축소나 매장 감축이 아닌 본점의 대규모 이전 확장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모험이었지만 이 역발상은 다행히 적중했다. 6월 15일 장기동에 본점을 오픈하자마자 매일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전 두달째를 맞은 지금 주중엔 300~400만원 주말엔 700만원 정도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박 대표는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지역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군부대를 대상으로 무료로 빵 봉사를 다니다 보니 장병들에게는 ‘빵장수 삼촌’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최근 사내에 ‘사회공헌팀’을 만들었다. 직원들은 매주 화요일이면 근무를 마치고 중증장애인센터, 소방서, 병원을 찾는다. 직원들은 여기서 사회적 약자들을 돕고 가져간 빵을 나눈다. 선행의 맨 앞엔 그의 동지이자 25년간 그의 곁을 지켜온 부인이 선다.
천금의 돈보다 단 한명의 친구! 그는 돈이나 사업적 성공을 위해 애써 달리지 않는다. 다만 이웃을 돕고 긍정 마인드를 나누며 친구와 우군(友軍)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가 면도날을 쥐고, 약통을 만지작거리며 극단의 선택을 반복할 때 그에게 다가와 아무조건 없이 사업자금을 건네준 이웃의 고마움을 알기 때문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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