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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경북 전통시장 탐방] (3)구미 새마을중앙시장

기사승인 2020.07.29  15: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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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비둘기호엔 황간, 영동, 김천, 왜관, 칠곡 장꾼들 가득

선산군의 한 면(面)에 불과했던 구미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 후 내륙의 중견도시로 성장했다.구미 새마을중앙시장의 남문 모습. 한상갑 기자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고 적고 있다.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서 선산에 대한 극찬인데 이 ‘찬사’ 속에서 살짝 비켜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구미. 당시 구미는 같은 선산에 속해 있었지만 서쪽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 동쪽의 선산이 김숙자, 김종직, 하위지 등 대유학자들을 거느린 영남 학풍의 본산이었다면, 서쪽 낙동강변의 선산(구미)은 식량, 채소와 땔감을 대던 초라한 배후도시였다.
선산군의 한 면(面)에 불과하던 구미가 영남 내륙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5·16 혁명 후. 구미 출신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를 구미로 통과시키고 대기업을 끌어들이며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1960년대 인구 1만을 밑돌던 구미는 단숨에 40만 명의 중견도시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 사이 선산은 인구 2만의 소도시로 쇠락했고, 1995년 구미·선산 행정 통폐합 때 구미로 편입되었다.
도시들 사이 세(勢) 대결은 구미와 선산에만 그치지 않았다. 조선 후기 5대 시장이 열릴 정도로 영남 중부 상업도시였던 이웃의 김천도 구미의 눈부신 성장에 밀려 1970년대 이후 구미에 맏형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1980년대 구미 근로자의 30%는 김천 사람이라고 할 정도였고, 상권의 중심축도 구미로 급속히 기울었다. 이런 도시의 흥망은 산업이나 경제 특히 전통시장의 역학관계에도 그대로 연결되었다.

구미 중앙시장 내부 모습.

◆구미종합시장의 태동과 발전=1905년 경부선 개설과 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은 구미에게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교통, 물류 대동맥이 열리면서 모래뻘땅에 불과했던 구미는 단숨에 산업도시로 발전해 갔다. 특히 신평, 원평, 광평동 일대는 구미역, 구미시외버스터미널과 구미 IC까지 열리면서 구미의 최고 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난전 수준의 중앙시장이 현대식 시장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상인회는 1975년 정식으로 주식회사를 결성한 후 상설시장으로 등록했다.
상인회에 신보균 사무국장은 “6·25 동란, 해방 후 구미역 주변에 자연스럽게 난전, 노점들이 생기면서 점차 시장이 형성 되었다”며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원평동 일대에는 장옥(場屋) 형태의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구미 중앙시장도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시내 핵심상권에 위치해 유동인구가 1만 명을 넘는데다 장날(1, 6일)이면 오일장 장꾼들까지 각지에서 몰려들어 하루 종일 인파로 북적였다.
장날 비둘기호 열차에는 황간, 영동, 김천, 왜관, 칠곡의 장꾼들로 가득했고 버스터미널엔 이웃마을 상인, 시민들이 넘쳤다. 구미가 대도시로 성장하면서 주변의 재래시장 상권이 구미를 중심으로 재편되었던 것이다.
당시 장날은 휴일이자 사교의 장이었다. 인근에 마을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고, 안부를 물었으며 혼담을 교환하기도 했다. 장터마당에는 언제나 여흥을 돋우는 놀이꾼, 풍물패가 들어서 자연스럽게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이제 세월이 변해 위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수도권으로 옮겨가며 경제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었고,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속속 생겨나 재래시장 상권을 침입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구미중앙시장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데는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이 컸다. 2013년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도 부친의 뜻을 이어 구미중앙시장에 큰 공을 들였다. 선거 때마다 시장에 들러 상인들을 격려하고 정치 동력을 얻었다.
새마을운동 유훈(遺訓)도 적극 계승해 시장에 새마을운동을 접목했다. 시장 음식메뉴에 ‘새마을도시락’을 개발해 ‘시민 메뉴’ ‘국민메뉴’로 홍보에 열을 올렸고, 2014년엔 시장 이름을 아예 ‘구미 새마을중앙시장’으로 변경했다.
이를 두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구미시가 너무 정치권 입맛에 맞추려다 전통시장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부자유의 몸이 되면서 새마을운동과 부친 업적을 현양(顯揚)하는 일은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국민들 상당수가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공7과3’ 정도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이를 관(官)과 정치권이 나서 너무 미화하고, 신격화하는 바람에 오히려 역풍이 분 것” 이라며 “그냥 국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고 역사의 흐름에 맡겼다면 이런 부작용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중앙시장의 입장에서는 두 분 대통령의 비극은 시장의 큰 버팀목이 사라진 것과 같다.

구미 중앙시장의 국수골목엔 양한 퓨전음식들이 많아 다양한 연령층이 입맛대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구미(口味)를 당기는 구미의 맛집들=중앙시장에는 풍부한 유동인구와 역전(驛前) 입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맛집들이 성업 중이다. 젊은층을 공략한 퓨전 음식들도 많아, 다양한 연령층이 각자의 입맛대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국수골목을 전국구의 반열에 올려놓은 ‘옛날 국수집’이 가장 유명하다. 미역국에 찹쌀 새알을 넣은 찹쌀수제비는 ‘백종원의 3대천왕’에 출연하며 한때 골목에 긴 줄을 세웠다.
‘할매떡볶이’와 ‘섹시한 떡볶이’도 젊은층들을 시장에 불러들이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밖에 10년 넘게 점포를 지켜온 ‘원남족발’, TV에 단골로 출연하는 ‘파파순대 왕족발집’ 도 맛 객들이 주로 찾는 식당이다.
김천, 선산 등 주변 도시와 각축하며 내륙 상업도시로 성장했던 구미시도 대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변에 대도시나 큰 시장이 있을 때 상권이 흡수되는 이른바 ‘빨대효과’ 때문이다. 승용차, 기차로 30분이면 대구에 닿을 수 있으니 구매력이 큰 구미의 큰손들이 원정쇼핑을 온다고 한다. 대구지역 백화점 VIP의 10%는 구미 손님들이라는 말도 있다.
어쨌든 재미있다. 도시의 흥망성쇠 과정에서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와 반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주변 도시들과 경쟁하며 낙동강 중류의 대도시로 성장한 구미가 대구마저 딛고 일어설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길과 맞닥뜨리게 될 것인지 세월이 흘러봐야 알 것 같다.

한상갑 기자 arir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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