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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듬뿍·추억 가득! 영남 전통시장 탐방] ②대구 봉덕신시장

기사승인 2020.06.23  11: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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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80년대엔 미군수품, 지금은 돼지국밥으로 전국적 유명세

한국전쟁 중에 생겨난 봉덕신시장은 올해로 66주년을 맞는다. 전쟁이란 역사 속에서 태동했지만 대구경제의 한 축을 이루며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 1970~80년대 당시 봉덕시장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워커, 담요, 재봉틀, 씨레이션(미군 전투식량)부터 온갖 구제품과 군수보급품들이 넘쳐났다. 한상갑 기자
 

정유재란 때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였던 울산성 전투.
당시 조명(朝明)연합군은 왜군을 성안에 가두고 보급로를 끊어버렸다. 식수가 끊긴 왜군이 소변을 받아 목을 축이고, 말의 피로 해갈(解渴)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극한의 공간 울산성에 매일 새벽에 시장이 섰으니 바로 물장수들이었다. 물장수들도 목숨을 걸고 성벽을 넘었을 것이니 그들의 물 한병은 금은과 바꿀 정도였다. 이렇듯 전쟁과 시장은 생사가 오가는 극한의 순간에서 묘하게 만나기도 한다.
전쟁과 시장이 조우한 흔적은 대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대구시 남구에 있는 봉덕시장은 6·25 한국전쟁이 대구에 남긴 유산이자 작은 선물이다. 한국전 당시 전쟁을 피해 대구로 왔던 난민들이 봉덕동 일대에 난전을 열면서 전시(戰時)시장이 자연적으로 생겨났다.
전략요충지로 대구를 주목했던 미군은 이천동에 군부대를 설치하고 대규모 군인, 군속을 배치하며 캠프헨리 시대를 열어갔다. 이 과정 속에 봉덕동 모퉁이 조그만 난전은 대구의 대형시장으로 성장해갔다. 미군부대와 시장의 동거는 이렇게 전란 속에서 싹을 틔웠던 것이다.

◆1970~80년대 미군부대 군수, 구제물품 넘쳐나
봉덕시장은 1954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설립되어 올해 66주년을 맞았다. 전쟁이란 불행한 역사 속에서 태동했지만 대구경제의 한 축을 이루며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
시장의 가장 호황기는 1970~80년대였다. 당시 캠프헨리에 주둔한 미국 병력 수나 군속, 한국인노무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고 이들이 여는 지갑은 지역의 큰 돈줄이자, 시장의 활력소였다.
당시 봉덕시장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워커(군화), 담요, 재봉틀, 씨레이션(미군 전투식량)부터 온갖 구제품과 군수보급품들이 넘쳐났다.
명품의류, 구제 패션을 찾아 대구의 멋쟁이들은 봉덕동으로 몰려들었다.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여성군무원이나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학생들이 골목을 누비며 쇼핑을 즐겼다. 이 때문에 패션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구 구제역사의 출발을 봉덕시장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상인들과 미군이 서툰 영어로 바디 랭귀지를 통해 흥정을 하는 모습은 당시 상가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그때는 영어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 없었고 그냥 ‘This~’ ‘That~’ ‘How much~’ ‘킹사이즈? 스몰사이즈?’만으로 장사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2. 봉덕신시장엔 보리밥, 한과, 돼지국밥 등 먹을거리가 풍부해 시민들이 옛 향수를 찾아 시장을 방문한다.

◆돼지국밥, 한과, 보리밥집 전국적 유명세
현재 봉덕시장의 점포 수는 노점 포함 모두 280곳. 청과, 채소, 양곡, 농축수산물, 반찬, 패션 등 웬만한 마트수준의 제품을 갖추고 있다. 봉덕시장의 인기 제품은 단연 한과. 인기 비결은 백화점, 마트와 달리 즉석에서 만들어 판다는 점이다.
44년간 한과를 만들었다는 한 상인은 “옛날에는 봉덕시장 한과를 사기 위해 경산, 고령, 칠곡에서도 일부러 여기까지 왔다”며 “요즘도 옛날 단골이나 어르신들이 옛맛을 찾아 일부러 여기까지 온다”고 말한다.
이곳 보리밥집도 제법 유명세가 있다. 식객들은 ‘공주보리밥파’와 ‘행복보리밥파’로 나뉘는데 맛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고, 각자의 입맛에 따른 기호의 차이일 것이다.
봉덕신시장의 최고 아이템은 뭐니뭐니해도 돼지국밥골목이다.
봉덕동 국밥의 특징은 부드러운 고기와 진한 국물맛. 돼지머리를 푹 끓여 국물을 내고 여기에 머릿고기를 썰어 말아내는 방법이다. 다른 식당과 큰 차이점은 없지만 머리를 통째로 넣으면서도 누린내를 잡은 것이 이곳의 비법이다. 이 누린내까지 사랑해야 진정한 국밥 마니아라고 하지만, 쌈장과 다대기를 적당히 첨가해 먹으면 이 잡내도 잡을 수 있다.
각 식당마다 개성이 뚜렷해 호불호가 가리지만 일반적으로 청도, 삼정, 김천, 털보식당을 봉덕신시장 국밥 4대천왕으로 부른다. 일부 호사가는 이를 세분화해 1강2중1약으로 나뉘는데 여기에 대한 평가와 검증은 각자의 몫이다.
입구에서 만난 윤경태(57) 씨는 “여기 국밥 특징은 넉넉한 고기로 수육을 따로 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말하고 “청도는 한약 냄새가 특징이고, 김천과 삼정은 쌈장을 얼큰하게 풀어 먹는 맛이, 털보는 잡내를 확실히 잡아줘 담백한 맛이 각자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3. 봉덕신시장 돼지국밥은 부드러운 고기와 진한 국물맛을 특징으로 한다. 고기가 넉넉해 수육을 따로 시키지 않아도 될 정도다.

◆2005년 현대화 사업 이후 ‘봉덕신시장’ 시대 열어
1972년에 정식 허가를 받은 봉덕시장은 주변 상권 침체와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등이 들어서면서 1990년도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시장이 기능을 잃어가자 남구청은 2005년 시장을 다시 살리기 위해 현대화사업을 실시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추진되지 못했다. 기존 봉덕시장은 주택가 골목에 자리잡고 있고 여러 권리관계가 얽혀 있어 협약이 원활하지 못했다. 이에 남구청은 봉덕시장 대신 큰 길과 붙어있던 상가들을 모아 현대화 사업을 실시했는데 그때 새로 생겨난 시장이 봉덕신시장이다.

2006년에 등록된 봉덕신시장은 지속적인 현대화 사업을 펼쳐 시장 전체에 아케이드와 넓은 공영주차장, 야외상설공연장 등을 설치했다. 덕분에 지난 2013년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진흥원이 발표한 ‘전국 전통시장 활성화 수준 평가’에서 최상위 등급인 A등급을 받기도 했다.
장흥섭 전 경북대 교수는 “봉덕시장은 한국전쟁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시장인 만큼 새로운 활성화 방안을 찾아 시장의 역사를 유지하고, 봉덕신시장은 국밥골목이나 구제골목 등을 특성화해 재미있는 관광거리로 만들어 활성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2일 취재를 위해 봉덕동을 찾았다. 1970~80년대 사람들로 가득했다는 봉덕시장은 옛 시장의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골목마다 손님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함광식 신시장상인회장은 “현재 재난지원금으로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지만 전통시장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라며 “봉덕신시장 상가번영회에서도 전통시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6·25전쟁 중에 대구에 경제 싹을 틔웠던 봉덕시장. 지금 포성을 멎었지만 전통시장 생존이라는 또 다른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조효민 기자 deconom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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